'제멋대로도 좀 굴지만 알고 보면 좋은 놈'에게 세상이 관대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낢님의 '
3: 10 투유마' 웹툰을 읽고서였다. 일하다가 저걸 읽고는 점심 먹으면서 회사 분들하고 저거 정말 그렇지 않아요? 하고 점심의 화제로 들먹였을 정도로 감명을 받았었다. 어딘가 허를 찔린 기분. 난 왜 이걸 몰랐지...는 아니었지만 뭐랄까, 확실히 한없이 착하기만 한 사람은 별로 재미가 없잖아?
S의 여친을 만나고 난 후에 동생네 갔을 때 만났노라, 하며 메눌아기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었다. 우리 메눌아기는 참말로 착하고 바르고 여러모로 바람직하고 상냥하고 그랬다. 동생은 피식 웃으면서 긍까, S하고 똑같이 고냥 나이스 나이스했던 거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S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던 동생에게 나는 늘 그 이유를 묻고 싶었었는데. 어째 그 이유를 듣게 될 거 같다 싶었었다. 동생이 말했다. 별로 재미있는 부분이 없고 그냥 착하고 좋은 사람일 뿐이야, 라고. 난 누나가 플러스 알파가 있는 사람이랑 더 어울리는 거 같아. 나는 저 말에 좀 헤벌레 기분이 좋아졌더랬지. 이건 좀 쓸데없는 얘기고, 여튼.
물론 세상에는 착하기만 한 사람도 있다. 마냥 착하고, 상냥하고, 성인같은 사람도 있겠지. 아무렴. 하지만 착한 색에다 자기 색이 하낫도 없으면 심심할 거 같다. 심심할 거 같다. 하물며 캐릭터들도 그냥 막 착하기만 한 애들은 없는데. 어딘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예상을 뒤엎는, 갑자기 와닿는 그런 부분이 있어야지.
실은 작년에 너무
착한 놈으로만 살아서 내 본체는 아무도 모르심지롱이 되었다... 하며 좀 거시기해 하고 있는 중이라. 나는 남이 나를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본다는게 이렇게 거북한 일일 줄 몰랐다. 물론 고맙고 좋은 거고, 그쪽에서도 아예 날 몰라서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닌 건 아는데, 나는 애초에 상대방이 날 얼마나 받아들여주나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 그것에 확신이 없으면 서비스업 종사자처럼 되버리곤 한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면 애정도 슬금 담아서 서비스, 내가 상대방을 안 좋아하면 애정은 없이 서비스.
(얼마 전에 이오공감 탔던 남자친구 생기는 주문, 저 그거 진짜 잘 해요. 제가 원래 맞춰주길 좋아해서. 욕을 별로 안 먹어서 오래 못 살 거에요 아마. -_-)한 번 접고겉으로 보여지는 것에는 별 차이도 없고, 원래 부탁 거절하거나 하는 성격도 안 되고 도와주는 거 좋아하긴 하니 괜찮긴 한데 그래도 상대방에 날 너무 맞춰주느라 내 색깔 안 드러내는 건 이제 좀 자제해야지, 싶어졌다. 상대방이 날 받아들여줄 것 같다, 는 확신이 있으면 뻘소리도 잘 하고 마구 장난치고 막말해도 마음쓰지 않을 수 있는, 좀 더 서로 좋은 관계가 되곤 하는데 어째 또 날 너무 좋게 보아주면 내 다른 면들에 실망하지 않을까 싶어서 좀 주저하게 되더라.
참 이상하다. 나는 이렇게 이러쿵 저러쿵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나를 보는 눈은 사실 크게 달라진게 별로 없다. 아마 그들은 어느 정도 내 성격도 다 알고, 알면서도 괜찮게 생각해주는 걸거다. 내가 뭐 나를 마구 숨긴 것도 아니고 완전히 딴 사람 같이 군 것도 아니었고 그저 색을 좀 죽이고 말 좀 참고 좀 더 얌전하고 그랬던 거 뿐이니까 뭐 뽀록날 건 다 뽀록났겠지. 사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사람이니까.
사람을 대하는 문제는 내게 10대부터 이어져온 화두다. 자꾸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스스로에게 블로그로 자기 최면(?)을 걸어준 덕에 그나마 이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먼저 선뜻 제안을 하고 연락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도와주고 도움을 받고 할 수 있게끔 변한 거겠지. 어쨌든 지난 4년 동안 나는 변하려고 썩 노력했고, 좀 느리게 변해가고는 있지만 어느 정도 성공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중요한, 자꾸 되짚어주고 업데이트해야 하는 나의 역사는: 고등학교 때는 이상한 일, 이상한 사람도 많이 겪었고, 좀 데기도 했고, 그와 동시에 정말 솔직할 수 있는, 마음이 통하는, 정말 지금까지 죽 이어져오는 기적같은 인연도 많이 만났다. 주변에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지만 그들이 날 지탱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별로 사람이 고프지 않았고, 일상에서는 한 발짝 멀찍이 떨어져서 그냥 좋은 사람이기만 하고 최소만 하자는 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지냈었다. 대학교 때 친구들 덕분에 오직 나 만이 남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있노라고 배웠고, 졸업한 후에 이렇게 할 걸, 하고 아쉬웠던, 후회스러운 부분들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다 보니 대학원 거친 후에는 어느새 아, 나도 모르게 그런 게 되는 거라. 작년과 재작년은 분명히 그런 면에서 무리를 좀 하긴 했어도 후회할 거리가 없는, 이론의 실행이 제대로 감행된 2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제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나보다 남에게 초점을 맞추고 내가 남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를 더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어떻게 할까를 더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좀 더 브레이크 풀어주고, 좀 덜 긴장하고, 좀 더 편하게 생각하고, 좀 더 탁 트인, 자유로워진 맘으로 내 마음이 가자는 대로, 내 발목 너무 붙잡지 말고 내 이야기도 좀 더 나눠보고 말이다. 그게 나 자신을 위한 길이고 그와 동시에 날 아껴준 상대방에게 내가 해야 할 마땅한 도리인 것 같다.
가끔 대화를 하다가 내 이야기를 상대가 원할 때면 나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참지 못하고 한 번 정도 꼭 묻는다: 지루하지 않아요? 나 재미없는데, 하고. 상대방이 물어봐서 대답을 하는 거여도 쓸데없이 말이 길어지는 거 아닌가 하고 미안해져서 말을 잘라먹고 그냥 덜 하고, 대충만 이야기하고 만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정직성과 취향을 좀 더 믿어보자. 과감하게. 그리고 내 어떤 모습도 다 그저 내 모습이란 이유로 받아들여 줄거라는 걸, 믿자. :)
덧. 사고의 전환에
최애들처럼 도움이 되는 사람들도 없다. 그들은 기이하게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화두에 대해 일종의 해답을, 하나의 전진법을 제시해준다. 서른 한 살이나 되가지고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솔직해서 거짓말은 정말 하낫도 못할 것 같은 이 사람은 내 맘 속에서 나를 자꾸 쿡쿡 찌르는 거다: 야, 난 초딩이란 말까지 듣거든? 넌 뭐냐? 알았어요, 오빠. 알았다구. 나 그래서 반성하잖아요.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오빠랑 만나면 괜찮은 놈이라는 평 들을 수 있게 노력할께요.
...어쩌다보니 또 마무리는 은지원 orz (그냥 순응해라, 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