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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노래, 게임 by 사은


아름답고 좋고 즐거워서. 보따리 풀어요.







Small Worlds / Full Moon / The Company of Myself
Click Play & CP 2 / GraveShift & GS2: The Sewers


뉴질랜드 도서 협회의 홍보 영상. 런던 출신인데 자꾸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생각해버리는 밴드의 노래. 갈수록 어렵고 긴 순번으로 줄 세운 게임 몇몇. 주말 초입에 올릴걸 그랬다 싶지만. 지금이라도. 나중에라도. 실은 얼렁얼렁 풀고 싶어서 좀이 마구 쑤셨어요.

눈갈이 by 사은

정기적으로 퍼뜩 나타나 날 괴롭히는 궁금증이 하나 있는데, 바로 눈이 좋은 사람에게는 가로등 불빛이 번지는 모양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 안경을 쓰고 볼 때랑 벗고 볼 때랑 다르기 마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나는 눈이 나쁘니 흐릿하게 번진다고는 해도 시력이 좋은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고. 이 상상이 과연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바탕 어떨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궁금해서 죽을 거 같은 호기심의 나락으로 뚝이다.
다르면 어떻게 다를까? 설마 같진 않겠지? 안경을 쓰고 볼 때는 그래도 유리를 통해서 보는 거니까 뭔가 굴절이라던가 하는 게 다르겠지? 눈이 좋은 정도에 따라서도 뭐가 조금씩 다르겠지? 대답 없는 물음이여.

요새는 이런 생각마저 든다. 사람마다 눈 모양도 죄 다르기만 한데 그렇게 다르게 생긴 눈으로 보는 게 과연 똑같을 수 있을까. 시력이 같아도. 눈높이가 같아도. 그래도 과연 똑같은 걸 볼까. 그런지 아닌지, 똑같은 게 보인다고 어떻게 아주 아주 확실하게 딱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특히 아, 예뻐! 하면서 카메라를 들었다가 눈으로 본 풍경이 그대로 담기지 않는 걸 보고 에라이, 하며 다시 내릴 때면 심해지는 이 생각. 나하고 카메라도 다른데. 카메라도 카메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는데. 카메라보다 정교하지만 설계도가 깨작깨작 다를 사람 눈은 오죽하겠나 싶고. 같은 걸 봐도 다 다른 걸 볼 거 같다. 최소한 집중해서 보는 부분은. 뭘 먼저 볼지는. 완전히 다를 것 같다. (내가 보는 것도 매번 달라 보이는데. 내 눈과 네 눈은 오죽 다를까. 내 눈도 보지 못하는데 네 눈으로 뭘 보는지는 어떻게 알까. 네 눈에 비친 나는 네가 보는 나인지. 아니면 내가 보는 나인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눈이 바뀐다는 것. 변한다는 것. 때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관심이 없고 무심한 눈. 관찰하는 눈. 피하고 외면하는 눈.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 차갑고 서늘한 눈. 답답해서 눈꺼풀만 열고 눈동자 뒤는 닫아버린 눈. 마음은 닫고 뇌하고만 연결한 분석하는 눈. 기대에 찬 눈. 조심하는 눈.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정으로 가득한 눈. 따뜻한 마음으로 눈동자가 포화 상태에 달해서 녹아내릴 거 같이 일렁이고 있는, 그런 눈.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너무너무 마냥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해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깜박이지도 못하는 그런 눈. 이런 눈으로 누군가를 볼 줄 아는 사람에겐 덩달아 그런 눈이 되어버린다. 부드러운 마음이 된다.

소리 기척 하나 없이 다가온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무늬 없고 납작한 나무 상자의 걸쇠를 딸각 열면 속에는 당구대에 깔린 것 같은 녹색 천이 안감으로 깔렸고 그 위에 움푹 팬 홈 안에는 여러 눈이 들어 있어서 그 사람이 나직이 '가시겠습니까' 하고 권하면 갈아볼 눈을 고른다거나... 하는 건 그냥 상상이고. 괜한 생각이고. 그러나 분명히 눈은 변해서. 나를 보는 내 눈은. 세상을 보는 내 눈은. 사람을 보는 내 눈은. 눈은 늘. 변해간다. 그렇게 계절은 바뀌고 해는 가고 시간은 흐른다.

눈갈이를 하는 그 순간이 좋다. 이렇게 보이던 것이 저렇게 보이게 되는 때가 좋다. 숨겨진 면을 발견할 때. 몰랐던 부분을 깨달을 때. 보던 것만 보지 말고. 알던 것만 알지 말고. 당연한 건 없음을 잊지 말고. 계속, 계속 변해라. 자꾸 변해라. 멈추지 말고. 그치지 말고. 굳어버리지 말고.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본다. 입은 고요해지고 눈은 동그래지고 공기는 차분하다.
멈춘 채 가만히. 말없이 조용히. 평화롭고. 고요하다. 깜박. 눈을 감았다 떠본다.

다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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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 센슈얼리티 by 사은

요즘 나란 인간은 굉장히 동물적이지 않은가. 단 것을 먹다 말고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이 감각이라는 것. 본능적이고 육체적인 자극. 감각을 사치스럽게 보살피는 편은 아니지만, 사실 인간이란 굉장히 단순한 존재다. 감각을 통해 느끼는 것처럼 짜릿하고 강렬한 것도 없다. 그 자극을 통해 파생되어 나아가는 현상은 또 얼마나 신기한지. 실제로 신체를 통해 닿는 것이 반드시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인데 나는 혀보다 뇌를 더 신뢰하고 있었다.

올 여름 후각과 미각, 그리고 촉감은 새삼스러웠다. 아주 오랜만에 스폰지 푸딩을 쪘을 때. 찜통에서 훅 올라오는 김. 컵 위로 플라스틱 용기를 뒤집어 소매로 덮은 손가락으로 양쪽을 꾹 누를 때의 감촉. 감사하는 마음으로 숟갈을 들어 시럽과 빵을 끈적하게 비볐다. 제대로 쪄진 거겠지? 내가 기억하던 그 맛일까? 입 안으로 골인했다. 달다. 부드럽다. 달다. 부드럽다. 달다. 부드럽다. 행복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시계와 계절과 무관하게 비슷한 하루 하루를 보내며 이런 시간이 끝이 날까? 하고 궁금히 여기던 내게 냉장고와 찬장처럼 현실감을 느끼게 해준 닻도 없었다. 일을 하다 퍼뜩. 낮에든 새벽이든 문득. 부엌으로 달려갔다. 뭣이 있는지 알 때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모를 때는 기대감을 가지고. 바사삭 부서지는 파이 껍질같은 패스츄리, 아래에는 차갑게 얼어 청명하기 짝이 없는 두꺼운 생크림과 딸기쨈을 품고 있는 바닐라 슬라이스.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물면 맨 위에 발린 아이싱의 달큰함이 느껴지고 맛보다는 질감이 먼저 느껴지는 생크림과 은은한 딸기쨈이 패스츄리 조각에 덮이면서 함께 버무려지며 혀를 감는다. 달다. 얇다. 차갑다. 신선하다. 맛있다. 이런걸 겹쳐놓을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굴까. 그저 씹는 느낌만으로도 만족스러운 패스츄리와 차가운 생크림에 단 맛이 섞이면서 행복해진다. 커피맛을 한 겹 둥둥 띄워놓은 묽은 인스턴트 커피도, 프림과 설탕을 잔뜩 넣어 걸죽한 갈색으로 만든 커피도 좋았다. 초콜릿을 살짝 담궜다가 먹었더니 머리 끝까지 전류가 흐를 것 같았다. 혀는 풍요로운 경험의 문이었다. 시큼한 또는 짭짤한 감자칩이 입가를 쓰리게 긁으며 한 입 가득 물리는 거라던가. 불투명하고 도도하던 하얀 백곰 사탕이 입안에서 찐득하게 변하며 이빨을 붙이는 느낌이라던가. 역시 가장 편하고 좋은 것인 아이스크림 콘의 아드득 부서지는 언 초콜릿과 혀에 닿자마자 녹는 바닐라의 뒤섞임이라던가. 뺨이 가득 차게 손바닥 가득 담아 입에 넣었던 땅콩이 텁텁하게 입안을 채우는 그 풍미라던가. '먹고 싶어서' 보다는 '먹는다는 행위'에, 그 감각에 집중했다.

포트에 물을 얹고 커피가 끓기를 기다리면서. 또는 허리를 굽히고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면서. 발 아래 바닥의 촉감을 느끼고. 시간의 흐름을 피부로 느껴보고 싶었다. 냉장고 또는 가스렌지의 차갑고 뜨거움이 피부에 닿았다. 문득 해가 난 날이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가 가만히 햇빛 아래 서서 살갗을 쏘는 햇살을 느꼈다. 너무 졸리거나 지칠 때면 이불을 훽 걷어버리고 침대 시트가 서늘하게 팔에 닿는 것을, 늘 약간 미지근한 베갯잎이 뺨에 닿는 것을 잠시 느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는 새벽에 문을 열고 나가서 코가 아릴 정도로 맑고 서늘한 공기를 맡았다. 팔이 허여멀겋게 보일락말락하는 어둠을 보았다. 주위의 나무들이 뒤엉켜 어두운 숲속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잠겨 바깥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가슴이 뻐근한 별로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차가운 공기가 축축한 공기가 가슴 속을 목구멍을 채워오는 느낌에 젖었다. 물론 갑자기 치솟는 피곤의 열기에 뺨이 뜨겁게 짜릿짜릿해지는 느낌 같은 것도 있었고. 등을 타고 주루룩 흐르는 땀방울 하나의 궤적만큼, 그리고 고막이 울릴 정도로 거세게 고동하는 심장만큼 아, 살아있구나- 하는 생생한 실감을 전해주는 것이 없다고 깨달았을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손가락의 담배 냄새가 묻어난 펜을 건네받았다. 펜에서 전해지는 아릿한 담배 연기. 흠칫 놀라며 새삼 냄새에 눈을 떴다. 내가 모르는 냄새, 낯선 냄새는 또 얼마나 많을까. 이전에 시도되었던 것처럼 화면 속 세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발명이 등장한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실제 현장의 공기를 가져다준다면. 그 곳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면. 문득 지원오빠가 있는 공간의, 기바 씨가 있는 공간의 냄새를 맡아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들은 어떤 내음을 가지고 있을까. 새삼 알 수 없음이 아쉬웠다. 오감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오감으로 다 겪어볼 수 있다면.

감각을 십분 사용하며 온전하고 깊게 그것을 느끼는 시간. 부러 느껴보는 시간. 내가 의도해서이든, 아니면 그러한 자극이 강렬해서이든. 이 느낌이란, 감각이란. 그것에 푹 잠기는 것이란. 좋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러한 것이 향락일까, 어쩌면 나는 향락주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어쩌면 시람은 살면서 생각을 하고, 결국에는 느낌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닐런지. 이런 사소한 느낌 밖에 느끼지 못하는, 큰 것은 감당하지 못하는 나이긴 하다만 너무나도 지극히도 단순하고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오감의 느낌이,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과 냄새로 맡게 되는 것과 닿는 것과 맛보는 것이 굉장히 대단하고 신비롭게만 느껴질 뿐이다. 새삼스레 그런다. 느낌이란 것, 눈과 코와 입과 귀와 손. 사람의 몸은 대단하구나, 싶어서. 감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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