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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by 사은


너무 자기 자신을 고집하지도, 너무 자기 자신을 물들이지도 않는 방법은 뭘까?
어떤 이는 조금 더 고집하는 법을, 어떤 이는 조금 덜 고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늘 중요한, 진정한 마침표를 찍으며 더욱 절감할.

세시 by 사은

러시아 시인 Vera Pavlova의 Four Poems를 읽었다. 인터넷에서 19일날 갓 나온 시집의 표지를 보고서 처음에는 시라는 것도 모르고 좋아했다. 구멍 숭숭하게라도 옮겨놔야지 하다가 구멍 숭숭하게 옮겨놓는.

If there is something to desire,          바램 있다면
there will be something to regret.      후회 있으리.
If there is something to regret,          후회 있다면
there will be something to recall.       회상 있으리.
If there is something to recall,           회상 있다면
there was nothing to regret.             후회 없었고.
If there was nothing to regret,          후회 없다면
there was nothing to desire.              바램 없었네.

Let us touch each other                    서로 어루만지자
while we still have hands,                 아직 손이 있는 한,
palms, forearms, elbows ...               손바닥, 팔뚝, 팔꿈치가 있는 한...
Let us love each other for misery,     괴롭고자 서로 사랑하자,
torture each other, torment,             서로 고문하며, 학대하고,
disfigure, maim,                                 손상하고, 잘라내며,
to remember better,                          보다 잘 기억하기 위해,
to part with less pain.                       보다 덜 아픈 이별을 위해.

We are rich: we have nothing to lose.     우리는 부유하다: 잃을 것이 없다.
We are old: we have nowhere to rush.   우리는 늙었다: 서둘러 갈 곳이 없다.
We shall fluff the pillows of the past,       과거의 베개를 부드럽게 부풀리고,
poke the embers of the days to come,     다가올 나날의 깜부기불을 쑤시며,
talk about what means the most,            가장 의미있는 것을 논하자,
as the indolent daylight fades.                 더딘 일광이 바래지는 사이.
We shall lay to rest our undying dead:     죽지 않은 망자를 무덤에 누이자:
I shall bury you, you will bury me.             내가 너를 묻고, 너는 나를 묻고.

단순하고 아름답고 깊고 함축적이고 간결하다. 사시 중 세시.

5년 by 사은

놀러와서 일주일 가까이 있다 간 친한 이들이 하나씩 돌아갔던 연말 어느 날, 마지막 남은 언니와 기차 시간이 남아 같이 동네를 돌다 서점에 들어갔다. 책 세 권을 10파운드에 파는 걸 보고 기차에서 읽겠다며 책을 세 권 골라달라 하셨다. 그래서 '열 세번째 이야기'와 표지가 인상깊은 '아빠가 결혼했다 -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 '고래의 몸 속에서', 골라드렸다. 이건(열 세번째 이야기) 읽었구요, 이건 유명하구요, 이게 가장 괜찮을 거 같아요. 그러자 '열 세번째 이야기'만 딱 잡으시고 나머지는 선물! 하시는 언니. 오마이. ㅠ_ㅠ
두 작품 다 아주 재미있었다. 특히 '아빠가 결혼했다 -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은 가족과 정착과 이민과 역사 등 별의별 이야기가 다 녹아있는데다 유머감각이 잔뜩이다. 데뷔 소설이 이렇다니 대단한 작가. (지금 옆동네에서 교수님이시다.)

다 읽고 나니 부페에서 김밥만 한 접시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을 주문했다. 짐이 적은 걸 좋아해서 책을 살 때면 괴로움과 기쁨이 함께 느껴지지만, 별 수 없다. 최대한 큰기쁨을 누리고자 후회하지 않을 법한 책으로 고르려고 애썼다. 그래서 주말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고, 이제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그 모든 것에의 작별'을 읽고 있다.

하루키의 책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몸을 쓰자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만 드러내는 방식이 재미있었고 본인을 비평적으로 보면서도 관철하는 모습이 멋졌다. 특히 청소년 시절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꼼꼼히 훑으며 이상한 부분을 다 짚어내고 몸만도 이렇다면 성격이나 능력 등은 오죽하랴! 라고 한 부분. 그리고 자신을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낡은 가방으로 비유한 부분도 좋았다.
읽으면서 1월 초에 한창 파고들며 고민하다가 내가 생각하기에 맞는, 내 '자세'에 어긋나지 않는 올바른 행동을 하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관철하는 것에 집중하고, 내 동기나 성격이나 성향 말고, 순수하고 순전한 그 판단과 선택으로 나를 만들어가자- 고 결론지었던 것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너무 자신감이(자신감'만') 넘치는 사람은 불편하다. 그렇지만 내 자신에게 백 퍼센트 만족하지 못한다 해도 남이 되고 싶다거나 쉬이 부럽다는 말을 쓰는 것은 자신에 대한 모욕 임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런 고요한 자신감 나이스.

그레이브스는 유년 시절 용돈의 얼마를 기부/적선에 사용하라고 교육을 받았다며: '윔블던 힐 보도에 앉아 큰 소리로 점자 성경을 읽는 맹인 거지가 있었다. 진짜 장님은 아니었지만 눈알을 뒤집어서 일부러 충혈시킨 내리깐 눈꺼풀 아래로 수 분간 눈동자를 감출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그에게 돈을 주었다. 그는 세상을 뜰 무렵 부자가 되어 있었고, 아들에게 대학비를 대 줄 수 있었다.' - 흐흐. 엄마한테 읽어드렸다.
1차 대전 당시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시지프리드 사순이나 윌프레드 오웬 등 친숙한 이름이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고등학생 때 1차 대전 영국 문학은 하나의 기점이었다.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그리고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다.

주말에는 왠지 무서울 거 같아서 미루고 미루던 '기생수'를 드디어 읽기도 했다. 왜 이 만화가 사춘기 자아의 확립에 대한 만화로 읽혔는지 모르겠다. 자아를 건드리고 형성하려는 외부의 영향에 무지하던 시절을 벗어나 이러한 침해적 영향(기생수)에 민감해진 청소년적 자아(주인공)가 자신이 완전히 먹히거나 타의에 의해 변화하는 것을 거부하며, 그와 동시에 어느 특정한 외부 영향(오른쪽이)에 의해서는 깊이 자극받고 변화하고, 다른 외부 영향(타미야 오코 등)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아 인식과 세계관이 바뀌어 나가며 결국에는 이러한 영향을 모두 흡수하고 또한 다양한 충돌과 환경을 겪으며 새로운 성숙한 자아를 확립한다- 랄까. 사춘기는 부모와의 관계도 변하고, 이성 친구와의 관계도 변하고, 나와 남이 보는 나의 이미지도 변하고, 무엇보다 자의식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시기. 오른쪽이는 자의식의 현현을 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오른쪽이의 영향을 받아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부분, 그리고 자신도, 그리고 남도 그의 자신다움에 의문을 던지는 부분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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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한 언니랑 전화를 하다 언니도 '집에서 자기 시간을 보낼 때면 나가서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고 나가서 사람을 만나면 집에서 책을 좀 읽어야 할 것 같아 고민'을 하신다며 균형을 잡으려고 늘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해주셔서 큰 위안을 받았다. 연말에 매일 한 사람만 만나도 일 년에 365명 밖에 못 만난다고 말씀하셔서 날 감동과 우러러봄과 충격에 빠지게 하셨었는데 언니도! 이런 기분. 감동했다. 사실 친한 동생에게 언니는 왜 외로움을 안 타냐는 타박 비스무리를 받아서 그 후 그게 잘못인가?! 난 그냥 혼자 해결하는 걸 좋아할 뿐이지 안 타는 거는 아니야;; 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관계에 자꾸 초점을 두고 생각을 하고 하는 건 내가 워낙 무인도에서 기쁘게 잘 살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들도 다 이렇기는 하다. 사람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는 아주 좋은 사람들. 자기 생활/시간이 확실한 사람들. 내 문제는 20대 초반까지 정말 저렇게 살 생각이었다는 데 있다. 사람은 너무 깊이 박히는 거라.) 언니는 무슨 성향이든 너무 치우칠 위험이 있으니까, 혼자서 못 있는 사람은 혼자 있는 법도 배워야 하고 혼자서 너무 잘 있는 사람은 좀 더 나가는 것도 배워야 하고, 그냥 그런 거라며 그러니 올해 300명 만나는 거야~ 하셨다. 300명! (창백)
그래서 저 부분은 해결. 사실 그 동생이 내게 약간 투정 비슷한 걸 부렸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편하니까 저렇게 말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아무리 알아도, 말이라는 건 나오면 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도 참 괜시리 사로잡혀 있었다.

대신 요즘의 고민은 이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존중해야 할 대상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의 존중과 배려를 한다. 사실 남을 대할 때 상대가 편하게 느끼게끔 해주는 것처럼 기쁜 것도 없고 하니까, 은근히 뿌듯해하면서 힘쓰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원래 나는 편애하고, 많이 편애하고, 아주 편애하고, 날 좋아하는 사람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막 다가가지는 않...는 게 아니라 못한다. (사실 한국에 갔을 때도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만나자는 말을 하는데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저쪽 마음을 함부로 넘겨짚을까봐서.) 또 그와 동시에 상대가 내게 그냥 그런 사람이라 해도 딱히 접근하는 걸 막지는 않는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해줄 수 있는 건 해준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건 정말로 뭐가 일어나느냐 하는 사실보다 뒤의 마음이다. 타산적인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 장님도 아니고, 이용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속이 뻔히 보이는데 그걸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여튼 그런다는 거다. 나는 상대가 날 이용하려는 마음으로 혹은 유용하게만 생각하며 부탁을 하고 요구를 해도, 내가 그걸 알고서도 받아줄 수 있는 범위까지만 딱 해준다면 그건 이용당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필수 봉사활동'마냥, 아무런 감정 없이 그냥 사무 처리하듯 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어쨌든. 상대가 누구건 간에,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긴 하니까, 내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허락하는 범위 이상을 넘으려고 하지만 않으면 오케이다. 서로 진심이면 된다. 그런데 세상이 각박해져서 그런지 이런 기본 존중/배려를 애정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OK인 부분 이상을 당연히 여기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내가 돈은 주고 뭘 해주는 건 해줘도 내 마음하고 나 자신 내주는 데는 상당히 짠데. 이것 참. 이럴 때는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친구 사이인데 '우리 사이를 네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아' 이런 대사를 할 수는 없잖아?!
언니랑 이야기하다 그런 이야기도 나왔다. 착착 짚어주는 사리분별력과 냉철한 판단력이 좋아 이것저것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며 친해졌다가 친해지고 나니 너무 쿨하다고 불평한다거나. 이쪽은 생각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것을 다 해놓고서 왜 너는 이렇게 해주지 않냐고 불평하는 것. 나는 이런 일방적인 불균형이 오는 건 결국 이러한 일종의 '관'이나 인간관계에서 기준, 혹은 가치가 다른 사람 사이에서나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바로 '안 맞는 사람'이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안 맞는다 생각하는데 상대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경우는 그야말로 개미지옥.

분명 20대 중반까지는 인간관계에서 내가 잘못하고 내가 실수한 것만 무럭무럭했는데 후반으로 접어드니 이런 것도 튀어나오는구나. 내 행동, 생각, 방침, 이런 것을 어느 정도 잘 생각해내고 굳히고 있다면 그 다음에는 상대방과의 '사이'를 어떻게 다룰지를 생각해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올해는 확실히 조금 더 거침없고 뻔뻔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갈수록 하고 있다. 이제는 조금 더 그래도 될 것 같다.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내 행동이나 방침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저 속에만 있던 관심을 더 솔직하게 표현하게 되었을 뿐이고, 그래서 그러한 후회(할 일을 안 했다는)가 줄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달라진 것은 관계의 가능성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실은 오늘로 여기서 글을 쓰며 지낸지가 딱 5년이 되서 무어라도 써야지 싶었는데, 그냥 감상글만 쓰기에는 그래서 오랜만에 이런저런 솔직한 잡담을 좀 써봤다. 갈수록 잡담을 덜 내놓게 되고 있는 건 반은 같은 말도 다르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고 반은 나만 좋은 유흥은 혼자 즐기자는 생각 때문인데 사실 여기서 내가 얻은 건 (내가 글을 쓰고 정리하고 스스로 되새기며 생각을 바꾸고 고민을 해소하고 하는 1인적 측면 외의 것을 짚어보자면) 다른 게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도 알아들어주는 사람들, 그리고 비슷한 곳을 보며 내 앞에서, 혹은 조금 뒤에서, 혹은 나란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죽 안고 살던, 내가 말이 되는 말을 하기는 하는 건가, 비논리/앞뒤 안맞음/편협과 독단과 말도 안됨의 극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의 타파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또 길디 길게 써봤다. 시작할 무렵에는 하루에 3~5개 포스팅이 기본, 매년 글이 천 개가 넘었는데. 그때는 정말로 이미 오래된 소중한 사람들하고 일상을 나누고자 하는 일기장이었다. 멀리도 왔다. 과연 언제까지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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