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으로 퍼뜩 나타나 날 괴롭히는 궁금증이 하나 있는데, 바로 눈이 좋은 사람에게는 가로등 불빛이 번지는 모양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 안경을 쓰고 볼 때랑 벗고 볼 때랑 다르기 마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나는 눈이 나쁘니 흐릿하게 번진다고는 해도 시력이 좋은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고. 이 상상이 과연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바탕 어떨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궁금해서 죽을 거 같은 호기심의 나락으로 뚝이다.
다르면 어떻게 다를까? 설마 같진 않겠지? 안경을 쓰고 볼 때는 그래도 유리를 통해서 보는 거니까 뭔가 굴절이라던가 하는 게 다르겠지? 눈이 좋은 정도에 따라서도 뭐가 조금씩 다르겠지? 대답 없는 물음이여.
요새는 이런 생각마저 든다. 사람마다 눈 모양도 죄 다르기만 한데 그렇게 다르게 생긴 눈으로 보는 게 과연 똑같을 수 있을까. 시력이 같아도. 눈높이가 같아도. 그래도 과연 똑같은 걸 볼까. 그런지 아닌지, 똑같은 게 보인다고 어떻게 아주 아주 확실하게 딱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특히 아, 예뻐! 하면서 카메라를 들었다가 눈으로 본 풍경이 그대로 담기지 않는 걸 보고 에라이, 하며 다시 내릴 때면 심해지는 이 생각. 나하고 카메라도 다른데. 카메라도 카메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는데. 카메라보다 정교하지만 설계도가 깨작깨작 다를 사람 눈은 오죽하겠나 싶고. 같은 걸 봐도 다 다른 걸 볼 거 같다. 최소한 집중해서 보는 부분은. 뭘 먼저 볼지는. 완전히 다를 것 같다. (내가 보는 것도 매번 달라 보이는데. 내 눈과 네 눈은 오죽 다를까. 내 눈도 보지 못하는데 네 눈으로 뭘 보는지는 어떻게 알까. 네 눈에 비친 나는 네가 보는 나인지. 아니면 내가 보는 나인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눈이 바뀐다는 것. 변한다는 것. 때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관심이 없고 무심한 눈. 관찰하는 눈. 피하고 외면하는 눈.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 차갑고 서늘한 눈. 답답해서 눈꺼풀만 열고 눈동자 뒤는 닫아버린 눈. 마음은 닫고 뇌하고만 연결한 분석하는 눈. 기대에 찬 눈. 조심하는 눈.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정으로 가득한 눈. 따뜻한 마음으로 눈동자가 포화 상태에 달해서 녹아내릴 거 같이 일렁이고 있는, 그런 눈.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너무너무 마냥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해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깜박이지도 못하는 그런 눈. 이런 눈으로 누군가를 볼 줄 아는 사람에겐 덩달아 그런 눈이 되어버린다. 부드러운 마음이 된다.
소리 기척 하나 없이 다가온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무늬 없고 납작한 나무 상자의 걸쇠를 딸각 열면 속에는 당구대에 깔린 것 같은 녹색 천이 안감으로 깔렸고 그 위에 움푹 팬 홈 안에는 여러 눈이 들어 있어서 그 사람이 나직이 '가시겠습니까' 하고 권하면 갈아볼 눈을 고른다거나... 하는 건 그냥 상상이고. 괜한 생각이고. 그러나 분명히 눈은 변해서. 나를 보는 내 눈은. 세상을 보는 내 눈은. 사람을 보는 내 눈은. 눈은 늘. 변해간다. 그렇게 계절은 바뀌고 해는 가고 시간은 흐른다.
눈갈이를 하는 그 순간이 좋다. 이렇게 보이던 것이 저렇게 보이게 되는 때가 좋다. 숨겨진 면을 발견할 때. 몰랐던 부분을 깨달을 때. 보던 것만 보지 말고. 알던 것만 알지 말고. 당연한 건 없음을 잊지 말고.
계속, 계속 변해라. 자꾸 변해라. 멈추지 말고. 그치지 말고. 굳어버리지 말고.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본다. 입은 고요해지고 눈은 동그래지고 공기는 차분하다.
멈춘 채 가만히. 말없이 조용히. 평화롭고. 고요하다. 깜박. 눈을 감았다 떠본다.
다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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